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주어진 기질이나 성격을 갖게 되고 그다음부터는 그것을 바꿀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성격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성격을 바꾸고 싶은 많은 사람들이 있고, 성격은 본래 정해진 것이 아니라 외부의 영향을 받아서 생겨나는 것이기 때문에, 변화하려는 마음만 제대로 먹으면 얼마든지 바꿀 수가 있다고 과학적으로나 여러 가지 연구를 통해서 이미 증명되었습니다. 자신의 성격이 싫다는 사람들은 먼저 자신을 남과 비교해서 또는 다른 사람의 기준에 자신을 맞추려고 하기 때문에 자신이 좋다고 생각하는 성격의 기준에 맞지 않는 자신의 모습을 찾아내고 그런 자신의 한 부분을 싫어하게 됩니다. 그러나 소극적이든 적극적이든 활발하든 조용하든 모든 성격에는 장단점이 있고 어떤 성격이 반드시 좋다는 법은 없습니다. 성격을 변화시키려고 하기 전에 이러한 속성의 원리를 먼저 이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들이 만든 기준에 맞춰서 자신이 가진 독창적인 기질이나 성격의 일부분까지도 바꿔 버린다는 것은 정말로 이상적인 자신을 발견해나가는 과정도 되기가 힘들고, 성격을 변화시켜야 할 이유도 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자기 스스로 나는 절대로 변화될 수가 없다고 선언하고 고집하고 살아가지 않는 이상, 누구나가 변화될 수가 있고 모든 것은 자연의 이치상 변화할 수밖에 없습니다. 오히려 절대로 변화될 수 없다는 생각을 유지하는 것이 변화되는 것을 막는 요인이 될 것입니다. 따라서, 스스로가 원하는 이상적인 자신의 모습을 마음속으로 심상화 하면서 변화를 추구하면 자연스럽게 작은 부분부터 변화가 시작될 수 있습니다. 물론, 외향적인 사람이 갑자기 내향적인 사람으로 완전히 변화되거나 내향적인 사람이 갑자기 외향적인 사람으로 하루아침에 변화되는 것은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자신의 모든 성격을 하루아침에 정반대로 뒤바꾸는 것은 오히려 진정한 자기 다운 모습을 잃어버리는 격이 되는 경우도 많을 것입니다. 따라서, 원래 가지고 있는 성격의 장점을 그대로 살리면서, 단점은 반대되는 성격의 장점으로 가져와서 변화시키는 게 더 바람직하다고 볼 수 있는 것이죠. 사람들이 성격을 바꾸고 싶은 이유는 지금까지 살아왔던 것보다 더 나은 내일을 살기 위해, 그리고 더 나은 자신이 되기 위해서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 자신을 완전히 잃어버리게 되면 변화되고 싶은 이유와는 점점 더 거리가 멀어지게 됩니다. 따라서, 자기 자신의 참다운 모습을 유지하면서 장점은 더욱 살리고 단점은 보완하는 방법을 적용해서 성격을 조금씩 변화시켜 나가는 것이 바람직할 것입니다.

 

소극적인 성격이 싫어서 활발한 성격으로 변화되고 싶은 사람은 소극적이지만, 세심한 장점은 그대로 살리면서 활발한 성격의 에너지 넘치는 장점은 가져와 자신의 모습에 적용시키고 응용해 볼 수가 있을 것입니다. 옷차림이나 외모의 특정한 부분들에 변화를 주는 것으로도 기분이나 마음의 변화를 유도할 수가 있을 것이고 항상 무엇이든지 해낼 수 있다는 생각을 유지하고 확언하는 습관을 가지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변화를 위해서는 기존의 행동이나 무의식적인 습관을 바꾸는 것, 그리고 변화를 유지해나가는 꾸준함이 가장 중요합니다. 하루 이틀 변화되는 모습을 지켜나가다가 금세 포기해 버리면, 변화는 완성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매일매일 동기부여를 하는 영상들이나 콘텐츠를 보고 들으며 스스로에게 자극을 주고 되뇌는 습관을 생활 속에서 적용시키면서 하루하루 나아가다 보면 어느새 변화되고 부족하다고 생각했던 성격의 단점들이 보완해되어 가는 이상적인 자신을 만날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합니다.  

누구나가 감정 컨트롤이 잘 되지 않아서 힘든 경우가 많습니다. 자기 스스로 어떤 목적을 가지고 어떤 생각과 함께 어떻게 해야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실행을 하려고 하지만 생각처럼 의지적으로만 잘 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러한 이유는 감정이라는 것이 사람이 의식적으로 생각하고 의지적으로만 컨트롤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감정이 컨트롤하기 어려운 이유는 우리의 마음이 단순하게 한 가지 의식적인 영역 안에서만 돌아가는 시스템이 아니고 생각보다 복잡하게 얽혀있는 관념들이나 기억들로 인해서 작용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관념들과 기억들이 의식적인 차원 안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의식의 차원을 넘어서 의식하지 못하는 무의식적인 차원에서 더욱 많은 과정들이 이어지고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감정이라는 것은 이미 오래전부터 쌓아왔던 여러 가지 기억이라든지 복잡한 관념들을 통해서 복합적인 상호작용 속에서 발생을 하고 감정이 올라오는 것을 우리가 의식적으로 느끼고 인지를 할 때는 이미 의식하지 못하는 차원에서 많은 것이 이루어져 버린 다음인 경우가 많습니다.

 

의식이라는 것은 우리가 순간순간 어떤 상황을 인식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다음에 무엇을 할지 의지를 일으키게 됩니다. 비교를 하거나 판단을 하거나 선택을 하거나 그러한 의식적인 기능을 가지고 있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사실은 이런 식으로 의식적인 기능이 발생하기 이전부터 이미 무의식적인 차원에서 어느 정도 그러한 것들이 결정되어버리고 거의 다 이루어진 상태로 의식으로 넘어오고 그 순간, 우리는 마치 의식적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거나 선택했다고 착각을 일으키는 경우가 많습니다. 결국, 자신이 모든 것을 의식하고 행동한다고 생각을 하지만 많은 부분들이 그 이전에 무의식적인 영역에서 이루어지게 된다는 말입니다. 무의식은 의식과는 다르게 무한하고 훨씬 더 커다란 영역이며 기억이 저장되는 거대한 저장 창고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오래전에는 무의식을 단지 부정적이고 어두운 마음의 또 다른 영역으로만 보았을 때도 있었지만, 그것은 무의식이 의식화되지 못한 자리에 그림자의 형태로 존재하는 단면적인 측면을 말한 것일 뿐입니다.

 

의식이 우리가 바로 인지를 하고 볼 수 있는 극히 일부분일 뿐이라면, 무의식은 그 나머지 의식을 제외한 모든 영역이라고 볼 수 있을 만큼 광대합니다. 그러므로 의식적인 차원에서 우리가 모든 것을 컨트롤할 수 있다고 장담을 해도 막상 컨트롤하기 어려운 것도 이러한 이유이며, 감정 또한 마찬가지로 무의식적인 차원에서 다루지 못하면 컨트롤하기 힘든 것입니다. 그래서 막상 컨트롤하기 힘든 감정이라는 것도 의식의 영역에서 무의식의 영역으로 접근을 할 수만 있다면 알지 못했던 부분들을 활용할 수 있게 되거나 감정적이거나 부정적인 기억 같은 것들을 어느 정도 컨트롤할 수 있는 변화를 만들어낼 수가 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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