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키마는 일반적으로 지식의 틀이 만들어진 것을 개념으로 하는 것으로 말하곤 한다. 그것은 일종의 정보의 큰 틀과도 같은데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 어떤 경험을 하거나 새로운 것을 접할 때 그것과 가장 비슷한 종류의 틀을 대상과 비교하게 된다. 이러한 과정은 머릿속에 정리된 큰 틀을 통해서 새롭게 접하는 것이 무엇과 비슷한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자면 우리가 아주 어렸을 때 다리가 넷 달린 동물을 보았고, 우리는 그것이 강아지라고 어른에게 배운다. 그러면 우리는 다리가 넷 달린 모든 동물들이 강아지라고 예상을 하는 것이다. 그 동물이 고양이이건 송아지이건 호랑이이건 상관없이 다리가 넷 달린 동물이라면 모두 강아지라는 틀 안에서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시간이 점점 지나면서 새로운 경험을 하고 큰 틀을 변경하고 수정하면서 더 구체적으로 다리가 넷 달린 동물 에는 강아지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동물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고 구체적인 정보를 확장해 나가게 되는 것이다. 

 

스키마라는 기억장치를 큰 틀로 이용하는 방법은 새로운 것에 있어서는 사실과는 다른 오류를 가져올 수 있지만, 우리가 가지고 있는 기억의 데이터와 새로운 상황이나 경험을 비교해서 판단하는 것에 있어서 매우 용이한 점을 가지고 있고 그 틀은 언제든지 새로운 데이터로 인해서 변경하고 수정을 할 수 있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세부 데이터를 지속적으로 바꾸고 영역을 넓혀 가는 것이다. 그래서 기존에 있던 오래된 데이터는 지워지거나 수정되고 새로운 이해를 위해서 틀 자체를 바꿔야 할 경우도 간혹 있게 된다. 우리의 뇌와 마음은 확실하고 안정적인 것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우리가 경험하는 현실이 불확실하거나 불안정하다면 불안함을 느끼게 되고 긴장되거나 스트레스를 받거나 여러 가지 불편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이러한 감정이나 상황들은 또다시 우리가 그 불확실함을 이해하고 확실하고 안정적인 상태로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답을 찾는 과정 속으로 들어가게 만드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새로운 것을 창조하기 위해서는 종종 자신의 스키마라는 큰 틀을 완전히 변경해야 하는 때가 있다. 자신이 가진 신념의 체계를 바꾸고 자신이 누구인지 정체성을 고민하고 어떻게 같은 상황을 다르게 대처해야 하는지 등등 굳건하게 믿어왔던 확실성을 불확실성으로 변경하고 틀 안의 모든 것들과 틀 자체를 변경하는 것 말이다. 이러한 변경 작업이 보통은 쉽지 않고 매우 힘든 일이기도 하기 때문에 단순히 자기 합리화를 통해서 오히려 변화를 추구하지 않고 기존의 스키마를 유지하려고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변화와 스키마의 수정이 없다면 과연 잠재력이 깨어나고 발전적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그 해답은 언제나 창조하고 불확실함에 도전하는 사람들의 몫일지도 모른다.

화가 났을 때 우리는 감정으로부터 한 발자국 물러나야 우리의 감정을 컨트롤할 수 있다.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가 내쉰다든지 하는 감정과의 거리는 두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하지만 한 발자국 물러서서 떨어 뜨는 방법보다 더 빠르고 효율적인 5초의 법칙이 있다. 원하지 않는 생각이나 감정이 올라오는 어느 때고 5초의 법칙을 사용해서 상태를 변화시키는 행동을 취할 수가 있다. 왜냐하면 5초 이상 안 좋은 생각이나 감정이 지속되면 거기에는 가속도가 붙고 원하지 않는 더욱 극심한 상태로 들어갈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감정 같은 경우에는 그런 극심한 상태로 들어가게 되면 더욱 다루기가 힘들어진다. 그래서 단순하게 5초 내에 빠르게 행동을 취하게 되면 어떠한 작은 행동이라도 그런 상태로 들어가는 상황을 방지하고 끊어 버릴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게 되는 것이다. 자, 무엇을 하려고 하는데 긴장감이 느껴지고 동기가 부족하다고 느껴질 때 단지 5초를 세는 것이다. 5 4 3 2 1 그리고 그것을 실행한다.

 

예를 들어서 호감 있는 이성에게 연락을 하려고 하는데 용기가 나지 않는다. 거절당하지 않을지 여러 가지 생각이 맴돌고 쉽게 버튼에 손이 가지 않는다. 그때, 5 4 3 2 1 숫자를 거꾸로 카운트하고 바로 버튼을 누르는 행동을 취한다. 망설이고 생각할 틈에 5초의 법칙을 적용하는 것이다. 화가 나거나 긴장될 때, 5초의 법칙을 호흡에 적용해보자. 5 4 3 2 1 크게 호흡을 시작한다. 5 초동안 숨을 크게 들이쉰다. 그리고 내쉰다. 그저 5초를 세고 바로 호흡을 하고 5초 동안 숨을 들이쉬고 내쉰다. 이러한 5초의 과정을 반복하는 것이다. 무언가 하기 싫고 게을러질 때, 아무것도 하기 싫을 때가 있다. 그러나 반드시 해야만 할 것이 있다. 그럴 때 우리는 다시 5초의 법칙을 적용시킬 수 있다. 5 4 3 2 1 카운트를 세고 1 이 되면 무조건 일어나거나 어떠한 행동을 취하는 것이다. 그리고 실행한다. 굉장히 단순해 보여도 이렇게 적용하는 것과 하지 않는 것은 행동력에 있어서 큰 차이를 만든다.

 

가령, 슬픈 상황이 와서 울고 싶거나 기분이 울적할 때 5초의 법칙을 적용해보자 숫자를 카운트한다. 5 4 3 2 1 그리고 활짝 웃는다. 5초 동안 웃고 다시 5초를 카운트하고 이번에는 신나거나 즐거운 음악을 듣는다. 이런 게 효과가 있을까 하고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지만, 우울하거나 슬픈 기분은 우리를 언제나 늪속으로 끌어당기고 그 감정에서 빠져나오지 않으면 더 깊은 수렁으로 빠지는 경향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상태 자체를 벗어나고 패턴을 끊는 것만으로 큰 효과가 있다. 아침 일찍 알람을 맞추고 일어나니 너무 피곤하다. 하지만 운동을 하러 가야 한다. 귀찮고 몸이 움직여지지 않는다. 5초의 법칙을 적용해보자. 5 4 3 2 1 무조건 일어나서 스트레칭하고 작은 행동을 취한다. 5초의 법칙은 이렇게 모든 상황에서 작은 행동의 첫걸음을 내딛게 하고 우리가 원하지 않는 것들에 대한 통제력을 높여주는 효율적인 역할을 해줄 것이다.

부정적인 생각에 빠져 들기 시작하면 그 생각으로부터 빠져나오기가 상당히 힘이 듭니다. 그래서 어떻게 해서든 부정적인 생각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여러 가지 시도와 노력을 하게 되고 긍정적으로 변화하려고 하게 되죠. 그러기 위해서는 수많은 방법들이 있을 겁니다. 공원을 산책한다든지 조깅을 한다든지 아니면 좋은 글귀를 담고 있는 책을 읽는다든지 친한 친구한테 전화를 해서 넋두리를 하거나 그에 따른 친구의 조언을 듣는다든지 사람마다 모두 제각기 다르고 굉장히 다양한 방법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부정적인 생각을 바꾸기 위해서는 그 생각을 변화시키는 방법을 사용해야 합니다. 이런 방법들 중에는 인지적으로 생각을 변화시키는 인지 변화 코칭법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인지 행동 요법에서 나온 코칭 방법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인지적으로 접근해서 어떤 생각을 변화시키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사람들과 잘 지내기 힘들어라는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을 때, 이런 생각을 하는 수많은 이유가 되는 다른 생각들이 있을 겁니다.

 

부정적인 중심 생각 주위에 그 이유가 되는 원인 생각들이 존재한다는 말입니다. 나는 자신감이 너무 없어라든지,  자존심이 지나치게 강해라든지 또 다른 생각들이 존재합니다. 그러면 여기에서는 생각을 변화시키기 위해서 먼저 해야 할 것이 원인이 되는 이런 생각들을 모두가 인정할 정도로 객관적으로 100% 진실인지 스스로 검토를 하고 증명을 하는 것입니다. 정말로 세상 사람 모두가 인정할만한 확실한 사실인지 말이죠. 자신감이 없는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전부 사람들과 잘 지내기 힘든 게 100% 객관적으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인지, 자존심이 지나치게 강해서 사람들하고 잘 지내는 것이 정말로 객관적인 사실인지 등등 중심 생각 주변의 원인 생각들을 하나하나 검토하고 객관적 사실여부를 스스로 증명해 나가는 것입니다. 이런 원인 되는 생각들은 주관적으로 왜곡되고 일반화되었기 때문에 대부분 100% 진실이 아닙니다. 그래서 검토하고 증명하는 과정 속에서 부정적인 중심 생각을 더 이상 지속할 필요가 없게 되는 것이죠 그렇게 되면 중심 생각의 자리를 비워낼 수가 있게 되고 그 자리가 비워지게 되면 그 자리에 새로운 긍정적인 생각을 다시 채워 넣을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100% 진실도 아닌 생각을 굳이 계속해서 굳건하게 믿을 필요가 없는 것을 스스로 깨닫게 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변화된 생각들을 부정적인 생각이 올라올 때마다 이건 100% 진실이 아니야 나는 이것을 믿지 않겠어, 내가 원하는 보다 증면된 생각들을 믿겠어 라고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됩니다. 그리고 반복적으로 이런 훈련이 지속되면 부정적인 생각에 빠지기보다는 생각에 있어서 객관적 주관적 균형을 갖출 수 있게 됩니다. 인지적으로 이렇게 스스로의 생각을 변화시켜 나가는 코칭법은 감정적으로도 크게 치우지지 않는 힘을 길러주어 사회생활이나 대인관계에서도 큰 도움을 줄 수가 있습니다. 

감정이나 습관 같은 무의식의 영역을 다루기 위해서는 의식에서 무의식의 영역으로 접근을 할 수가 있어야 하는데, 의식적으로 무의식을 통제하려고 하거나 억압하면 오히려 그에 대한 무의식으로부터의 역반응이 일어나서 더 다루기가 어려워지게 됩니다. 감정 같은 경우는 더욱 격렬해지기만 할 겁니다. 그렇다면 어떤 방법으로 무의식의 영역에 접근을 해서 감정이나 습관 같은 것을 다루고 의식화시킬 수 있는지 궁금할 수밖에 없습니다. 예를 들어서, 어떤 감정이 올라온다면 처음에는 있는 그대로 그 감정을 받아들이고 멀리 떨어져서 관찰을 해보는 겁니다. 지금 이런 감정을 내가 느끼고 있다는 것을 인지를 하는 것이죠. 중요한 것은 마치 내가 아닌 제삼자가 된 것처럼 그 감정을 왜곡 없이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관찰을 해보는 겁니다. 감정 자체에 휩쓸리지 않고 그것을 받아들이되 관찰된 감정의 무의식적인 연관된 생각들을 그대로 지켜보는 겁니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으니까, 이런 감정이 올라오는구나' 하고 생각하는 것이죠. 이렇게 관찰을 함으로써 조금 더 구체적으로 무의식적인 영역을 알아차리고 볼 수가 있게 됩니다. 그렇게 하면, 어떤 생각들로 인해서 내가 이런 감정과 생각들을 가지게 되었는지 하는 것을 좀 더 살펴볼 수가 있게 되고 그와 연관된 여러 가지 생각이나 관념, 기억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것을 통해서 무의식적으로 의식 너머에서 쌓여왔던 많은 과정들이 비로소 의식화되기 시작합니다. 의식이 무의식을 다루고 이해할 수 있는 영역 속으로 조금 더 가까워질 수 있게 되는 것이기도 합니다. 무의식의 패턴화 돼버린 자동화 과정들을 이렇듯이 하나씩 의식화시키고 바로 의식적으로 이해한다는 것이 처음에는 쉽지가 않은 것이 당연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상생활에서도 의식화하는 훈련을 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며, 만약에 어떤 감정이 일어난다면 감정에 휩쓸려서 감정에 반응하거나 행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 때문에 이런 감정이 일어난 것이고 무슨 생각이나 관념, 기억들과 연관이 되어있는지 그 감정과 연결되어있는 의식하지 못하는 생각들과 패턴들을 알아내고 의식화시켜서 내가 원하지 않는 그런 부분들이 있다면 스스로 변화를 시킬 기회를 포착하고 다룰 수 있는 잠재적인 능력을 계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런 과정이 거듭된다면 무의식적인 많은 과정들이 의식화되는 경우가 점점 많아지고 그것을 통하여 감정이나 습관 등 의식적으로 다루기 힘든 무의식의 영역을 의식화할 수 있는 방법도 점차적으로 깨닫게 될 것입니다. 무의식을 의식화하는 방법은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들로부터 벗어나서 당연하지 않은 것으로써 의식하고 변화시키는 데에 그 초점을 두어야 할 것이며, 인지능력을 메타 수준으로 발전시켜야 그 잠재력을 더욱 극대화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누구나가 감정 컨트롤이 잘 되지 않아서 힘든 경우가 많습니다. 자기 스스로 어떤 목적을 가지고 어떤 생각과 함께 어떻게 해야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실행을 하려고 하지만 생각처럼 의지적으로만 잘 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러한 이유는 감정이라는 것이 사람이 의식적으로 생각하고 의지적으로만 컨트롤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감정이 컨트롤하기 어려운 이유는 우리의 마음이 단순하게 한 가지 의식적인 영역 안에서만 돌아가는 시스템이 아니고 생각보다 복잡하게 얽혀있는 관념들이나 기억들로 인해서 작용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관념들과 기억들이 의식적인 차원 안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의식의 차원을 넘어서 의식하지 못하는 무의식적인 차원에서 더욱 많은 과정들이 이어지고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감정이라는 것은 이미 오래전부터 쌓아왔던 여러 가지 기억이라든지 복잡한 관념들을 통해서 복합적인 상호작용 속에서 발생을 하고 감정이 올라오는 것을 우리가 의식적으로 느끼고 인지를 할 때는 이미 의식하지 못하는 차원에서 많은 것이 이루어져 버린 다음인 경우가 많습니다.

 

의식이라는 것은 우리가 순간순간 어떤 상황을 인식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다음에 무엇을 할지 의지를 일으키게 됩니다. 비교를 하거나 판단을 하거나 선택을 하거나 그러한 의식적인 기능을 가지고 있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사실은 이런 식으로 의식적인 기능이 발생하기 이전부터 이미 무의식적인 차원에서 어느 정도 그러한 것들이 결정되어버리고 거의 다 이루어진 상태로 의식으로 넘어오고 그 순간, 우리는 마치 의식적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거나 선택했다고 착각을 일으키는 경우가 많습니다. 결국, 자신이 모든 것을 의식하고 행동한다고 생각을 하지만 많은 부분들이 그 이전에 무의식적인 영역에서 이루어지게 된다는 말입니다. 무의식은 의식과는 다르게 무한하고 훨씬 더 커다란 영역이며 기억이 저장되는 거대한 저장 창고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오래전에는 무의식을 단지 부정적이고 어두운 마음의 또 다른 영역으로만 보았을 때도 있었지만, 그것은 무의식이 의식화되지 못한 자리에 그림자의 형태로 존재하는 단면적인 측면을 말한 것일 뿐입니다.

 

의식이 우리가 바로 인지를 하고 볼 수 있는 극히 일부분일 뿐이라면, 무의식은 그 나머지 의식을 제외한 모든 영역이라고 볼 수 있을 만큼 광대합니다. 그러므로 의식적인 차원에서 우리가 모든 것을 컨트롤할 수 있다고 장담을 해도 막상 컨트롤하기 어려운 것도 이러한 이유이며, 감정 또한 마찬가지로 무의식적인 차원에서 다루지 못하면 컨트롤하기 힘든 것입니다. 그래서 막상 컨트롤하기 힘든 감정이라는 것도 의식의 영역에서 무의식의 영역으로 접근을 할 수만 있다면 알지 못했던 부분들을 활용할 수 있게 되거나 감정적이거나 부정적인 기억 같은 것들을 어느 정도 컨트롤할 수 있는 변화를 만들어낼 수가 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의 친밀감을 의미하는 라포는 이미 잘 알고 계실 겁니다. 하지만, 나 자신과의 공감대와 친밀감을 형성하기 위한 코어 라포라는 용어는 생소할 수도 있습니다. 코어 라포는 타인뿐만이 아니라 자기 자신과의 관계 형성도 무엇보다도 중요하기 때문에 타인과의 라포 이상으로 중요할 때가 많습니다. 내면의 자신과 제대로 소통이 되지 않는다면 결과적으로 타인과의 소통이나 관계 또한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의식과 무의식 사이의 소통과 관계를 의미하며, 그 일치성의 정도 또는 친밀도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공부를 꼭 해야 되는데 도저희 집중이 되지 않아서 하지 못한 경험이 있을 겁니다. 아니면,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 있는데, 도중에 포기하고 이끌리듯 해버린 경험이 있을 겁니다. 회사 면접을 잘 봐야 되는데 의식적인 생각과는 달리 예상하지 못하게 내 맘대로 되지 않은 그런 경험들이 있을 겁니다. 이것은 모두 자신의 의지와는 다르게 자신 속에 불일치되는 관념들과 무의식적인 반응들이 의식적으로 내가 원하는 것을 할 수 없도록 만듭니다.

 

마치 말도 안 되는 일인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이러한 모든 일들은 일상적으로 우리가 알게 모르게 주위에서 경험할 수 있는 것들입니다. 단지 무심코 그냥 지나치고 그 원인이나 현상 자체를 그다지 궁금해하지 않기 때문에 의식화되지 못할 뿐이죠. 이렇듯이 자신의 내면과의 소통이 제대로 되지 못하면, 아무리 의식적으로 무엇을 해보려고 노력해도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여지지 않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래서 자기 자신과의 소통은 타인과의 소통만큼이나 중요하게 생각하고 다루어질 필요가 있습니다. 중요하게 다루어야 할 코어 라포라는 것을 잘 형성하기 위해서는 먼저 내면의 목소리에 집중하고 의식적으로 하려는 것과 불일치하는 무의식적 반응이나 생각을 조율해야 합니다. 막무가내로 의식적으로만 끌고 간다고 무의식적인 불일치성이 의식과 일치하게 되는 것이 아니므로 그에 따른 전략을 세워야 합니다. 그 불일치성의 거리감을 좁히기 위해서 의식의 전환을 할 것인지, 아니면 무의식적 습관화된 패턴이나 생각들의 교정과 변화를 추구할 것인지 말입니다. 

 

의식의 관점 전환과 무의식의 컨트롤 방법을 통해서 우리는 의식과 무의식의 일치성을 어느 정도 높일 수가 있게 되는데, 관점의 전환이란 내가 어떤 고정된 틀을 가지고 지금까지 경험해온 것들을 토대로 관점화 시킨 것을 전환시켜서 다른 관점에 서서 상황을 볼 수 있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무의식의 컨트롤은 의식이 무의식을 통제한다는 개념보다는 무의식이 말하고자 하는 것을 그대로 수용하고 관찰하면서 의식화되지 못한 감정이나 생각들을 이해하고 인지한 후에 변화를 추구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렇게 관점을 전환하고 무의식을 컨트롤하는 방법을 조금씩 익혀간다면 의식과 무의식의 소통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서 나와 나의 내면 사이의 간격을 줄일 수 있고 원하는 목표에 도달하는 것이 더욱 수월해짐은 말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삶의 매 순간순간마다 선택을 하고 그 선택 속에서 미래의 모습을 맞이하면서 살아갑니다. 그리고 그 선택에 따라서, 삶의 모습들도 매 순간 변화하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순간순간 우리 자신으로부터 내려지는 선택들이 우리에게 얼마나 의미 있고 중요한지는 아마 두말해도 잔소리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중요한 선택의 기로 앞에서 언제나 우리는 스스로가 원하는 선택을 하며 주체적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누군가는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겠지만, 누군가는 머리를 갸우뚱하거나 대답에 자신이 없어서 모르겠다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삶에 있어서 중요한 선택의 순간들을 타인의 판단에 맡기거나 외부의 시선 또는 사회적 편견이 두려워서, 그렇지 않다면 가족들이 원하기 때문이라는 여러 가지 많은 이유들을 대어가면서, 주체성 없이 외부에 내맡긴 채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비단, 외부의 문제뿐만이 아니라 내부적인 부분에서도 틀림없이 스스로 쌓아온 제한된 고정관념 등으로 인해서 '난 이렇게 계속 살아왔으니까' '다 똑같지 뭐'라는 식의 자기 정당화를 통해서 무의식적으로 의식적인 통찰이 없이 자신의 주체성을 외면하고 내던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선택하는 삶이고 주체적으로 사는 삶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아마도 매 순간순간, 외부적으로든 내부적으로든 자유롭고 그 자유의지에 따라서 끊임없이 원하는 삶을 선택해나갈 수 있는 삶일 것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스스로에 대한 의식적인 컨트롤이 필요하고 무의식적으로 자신도 모르게 자동화되어버린 습관과 패턴 속에서 벗어나서 진정으로 자기 자신이 원하는 자신의 이미지를 그려내고 목표와 결과에 대한 명확한 설정과 함께 끊임없이 그 이미지를 키워 나가야 할 것입니다.

 

자존감이라는 것은 자기 자신의 가치 평가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스스로가 정말로 원하는 긍정적인 이미지를 설계하고 그 이미지에 따른 가치를 스스로 높여갈 수만 있다면, 포기하거나 좌절하는 무책임한 모습이 아니라 당당하게 자신감과 자존감을 가지고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확고한 정체성과 함께 긍정적인 에너지를 가진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는 토대가 될 것임에는 틀림이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매 순간순간 깨어있는 의식 속에서 내가 진정으로 의도하고 목표하는 것이 무엇인지 스스로 설계하고 만약에 빠뜨리거나 의식하지 못하는 것들이 있다면 그것에 집중하고 발견해내어 새로운 현재를 만들어 내고 그 현재 속에서 또한 새로운 미래를 창조해내는 그런 마음가짐이 필요하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이렇듯 선택하고 주체적으로 삶을 살아가는 것은 인생에 있어서 커다란 의미이며 인간은 이러한 의미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완성해가는 궁극적인 목적을 가진 존재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우울함은 흔하게 우리가 느낄 수도 있는 감정이지만, 그 정도가 심해지면 극단적인 선택으로 이어질 수 있는 무서운 증상 중에 하나라고 볼 수 있습니다. 세로토닌이라는 뇌 내부 신경전달물질의 저하가 우울증과 관련된다고 정의하고 있으며, 신경전달물질을 조절하여 우울증을 치유한다고는 하지만, 이것은 그에 따른 신체적 피로감이나 부작용으로 인하여 결국에는, 본인 스스로 마음의 훈련이나 컨트롤이 없이는 평생 동안 다른 것에 의존하고 살아가야 하는, 이른바 일상생활 자체가 어려워지는 상황이 초래되기도 합니다. 우울한 감정은 어떤 상실감이나 박탈감, 괴리 감등으로부터 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가 소중하게 생각해오던 것들로부터의 상실감이라든지, 아니면 특정한 대상으로부터의 비교를 통한 상대적 박탈감 이라든지, 스스로 바라는 욕구와 현실과의 거리감으로부터 느껴지는 괴리감 등등 이러한 감정들이 반복되고 쌓여갈수록, 우울이라는 감정의 늪은 사람을 강력하게 빨아들여 헤어 나올 수 없도록 끌어당겨버립니다. 

 

그렇게 그 우울의 늪에 깊게 집어삼켜지면, 더 이상 헤어 나올 수 없는 우울한 감정상태에서 완전하게 매몰되어 스스로를 파멸의 지경에까지 몰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우울의 늪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요? 우선적으로는 생각의 관점 전환이 필요합니다. 누구나가 관념이라는 것이 있고 그 관념은 인과를 거쳐서 의미를 만들게 됩니다. 예를 들어, '나는 능력이 없어서 쓸모가 없어'라든지 '나는 돈을 못 버니까 가치가 없어'라든지 이러한 부정적인 등식이 성립될 수도 있고 이런 관념들이 반복을 거치면서 강해지고 상당히 부정적으로 일반화된 자신만의 왜곡된 신념이라는 것을 만들게 됩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실제로는 본인이 생각하는 것과는 다르게 객관적으로 그 정도가 심하지 않거나 제삼자가 보았을 때는 전혀 다른 관점과 생각을 가질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의 전환은 우울이라는 늪에 매몰되어있는 자기 스스로를 다시 바라보고 꺼내올 수 있는 기회를 만들게 되고 기쁨이나 즐거움 등과 같은 다른 긍정적인 상태의 내부 자원에 접근을 할 수 있는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 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오직 한 가지 상태에만 갇혀있는 것은 수많은 가능성들을 배제한 채, 단지 자신만의 한 가지 가능성에만 매달려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가능성들은 언제나 동시다발적으로 존재함을 인지하고 자기 스스로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최악의 상황에도 제시해 본다면, 부정적인 상태 변화와 극단적인 선택을 초래하는 상황을 방지할 수 있는 최상의 방법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한 가지 이상의 다양한 가능성을 내다볼 수 있는 여유로운 정신을 유지해 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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