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태어나자마자 자신이 누구인지 알지 못합니다. 그 이유는 태어난 직후에 자아는 제대로 형성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지요. 그렇다면 어떻게 자아가 형성될까요? 많은 사람들이 잘 알고 있듯이 환경과 교육에 의해서 시간의 흐름과 함꼐  자아는 서서히 형성되어 자신이 누구인지를 찾아가는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으로 자아가 형성되는 시작점은 거울과도 연관이 있습니다. 거울속 자신의 모습을 스스로가 처음부터 볼수 없다고 생각을 해본적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만약 이 세상에 거울이 없다면 어떨까요? 당신이 누구인지 시각적으로 전혀 인지를 할수 없다면 어떨까요? 나는 누구 일까? 하는 고찰적인 질문을 던져서 스스로 완성해 내기까지의 시간이 없다면 말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아가 어떻게 생겨나는지 무엇인지 그 자체에는 관심을 갖는 경우가 드뭅니다. 하지만 자아 그 자체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그 너머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면 모든 정신적 질환이나 근본적인 물음에 대한 해답에 접근 하는 것은 실질적으로 어려울 것입니다.

 

인간은 완전한 존재로서 태어나지만 또한 불완전한 존재로서 완성되어 지기도 합니다. 그것은 새로 창조된 현실속에 적응을 해야하는 자아의 모순적인 고뇌와도 닮아 있습니다. 군대 다녀오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나이가 아무리 많든 사회에서 아무리 잘 나갔든간에 아무리 지식이 뛰어나고 지적인 사람일 지라도 이등병의 신분으로 군대라는 시스템 속에 발을 내딛는 순간 기존의 틀은 모조리 무너지고 바보처럼 되어 버리고 맙니다.

 

말 그대로 자아는 또 다른 세상에서 혼돈의 구렁텅이로 던져집니다. 인간에게 세상은 비유적인 거울이기도 합니다. 세상을 바라봄으로써 몰랐던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고 그것은 마치 거울 처럼 자신이 누구인지 인식하게 만들어 주기도 하는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죠. 그렇다면 여기까지 이해도가 있으신 분들은 재미있는 궁금증을 느끼는 분들도 있을 수 있을 겁니다. 과연 자아라는 것은 자신을 찾고 완성하는 주체적 의미가 맞는가? 하는 그런 궁금증 말입니다. 왜냐하면 뚜렷한 자아를 형성함과 동시에 결핍은 바로 그자리에서 생겨나고 그 결핍은 언제나 그것을 채우기 위해서 스스로 만든 자아가 지니지 못할 그 무엇을 욕망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사회에서 성공하는 데 있어서 IQ 지수만이 중요하다는 인식은 이제는 많이 수그러진 거 같습니다. 그만큼 사람들이 EQ 지수 즉, 정서와 관계된 감성지수가 인간관계와 사회활동에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경험을 통해서 인식을 하게 된 것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EQ 감성지수라는 것은 자신의 감정을 잘 컨트롤하여 상대방의 감정이나 기분을 읽어내고 그에 따른 관계를 리드하는 능력이기도 합니다. IQ 만 높은 사람은 수학이나 특정 한 분야에서 천재적인 능력을 펼칠 수는 있지만, 그만큼 사회적인 대인관계에서는 외골수 같은 모습을 보일 때가 많습니다.  관계가 복잡해지면 질수록 감성지수는 더욱더 필요해지고 인간관계에 있어서 윤활제 같은 역할을 한다고도 볼 수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자신에게 공감해주고 이해해주는 사람을 좋아하게 되어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사랑을 주는 것보다는 사랑을 받는 것에 그만큼 익숙해져 있다고도 볼 수 있는 것이죠. EQ 가 높은 사람은 다른 사람을 잘 이해해하고 정서적으로나 감정적으로나 공감하는 능력이 탁월하기 때문에, 사람들과 의 대화나 소통에 있어서도 매끄러운 관계를 하는 것이 쉬워지고 들어주는 입장이 되는 경우가 많아집니다. 그로 인해 사람들이 먼저 찾는 사람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강하게 리드하지 않아도 부드러움 속에서 마치 태양처럼 사람들을 녹여내고 따르게 만드는 힘이 생기도록 만든다고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EQ를 향상시켜서 이런 능력을 가질 수가 있을까요? 우선은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먼저 상대방에게 귀를 기울여 주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상대방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는지 그 의도는 무엇인지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세심하게 들어줍니다. 그리고 상대방이 느끼는 감정을 이해하고 그것에 대한 나의 감정을 표현하는 연습을 합니다. 이러한 훈련이 지속되면 될수록 점점 더 상대방의 감정을 읽어내고 공감하는 능력이 점차적으로 향상될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감정에 대해서 솔직하게 바라보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내가 어떤 상황에서 무슨 일을 겪을 때,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스스로를 잘 관찰하고 그 감정에 대해서 자기 스스로가 누구보다 먼저 인식하고 컨트롤할 수 있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자신의 감정도 제대로 읽을 줄 모르고 컨트롤할 수 없다면 다른 사람의 감정은 결코 읽거나 이해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먼저 스스로의 감정을 관찰하고 조절하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어느 정도 자신을 컨트롤하는 훈련이 되었다면, 이제 상대방에게 내가 가진 감정에 대해서 상대방이 이해할 수 있도록 표현하는 연습을 해봅니다. 상대방이 자신을 오해하지 않고 내가 느끼는 것을 표현했을 때, 이해할 수 있도록 자신의 감정을 정확하게 표현하는 연습은 그만큼, 감성지수를 높이고 상호 간의 의사소통 능력을 향상하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또한, 모든 사람들은 제각기 다른 인격체이므로 같은 상황 속에서도 서로 다른 감정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을 제대로 이해하고 개개인에 대해서 존중하는 자세를 가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면, 어떠한 상황 속에서 나의 방식으로만 주장을 관철시키는 것이 아니라, 타인을 이해하고 타인의 관점에서 공감하는 마음이 점차적으로 생기는데 도움을 줄 것입니다. EQ 감성지수는 살아가면서 연습과 훈련에 의해서 얼마든지 향상될 수가 있는 영역입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고 무엇인가를 하기 위해서 언제나 관계 속에서 살아가게 되어있습니다. 그만큼, EQ 지수는 그 안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항상 관심을 가지고 향상해 나가야 할 이유이기도 한 것입니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주어진 기질이나 성격을 갖게 되고 그다음부터는 그것을 바꿀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성격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성격을 바꾸고 싶은 많은 사람들이 있고, 성격은 본래 정해진 것이 아니라 외부의 영향을 받아서 생겨나는 것이기 때문에, 변화하려는 마음만 제대로 먹으면 얼마든지 바꿀 수가 있다고 과학적으로나 여러 가지 연구를 통해서 이미 증명되었습니다. 자신의 성격이 싫다는 사람들은 먼저 자신을 남과 비교해서 또는 다른 사람의 기준에 자신을 맞추려고 하기 때문에 자신이 좋다고 생각하는 성격의 기준에 맞지 않는 자신의 모습을 찾아내고 그런 자신의 한 부분을 싫어하게 됩니다. 그러나 소극적이든 적극적이든 활발하든 조용하든 모든 성격에는 장단점이 있고 어떤 성격이 반드시 좋다는 법은 없습니다. 성격을 변화시키려고 하기 전에 이러한 속성의 원리를 먼저 이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들이 만든 기준에 맞춰서 자신이 가진 독창적인 기질이나 성격의 일부분까지도 바꿔 버린다는 것은 정말로 이상적인 자신을 발견해나가는 과정도 되기가 힘들고, 성격을 변화시켜야 할 이유도 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자기 스스로 나는 절대로 변화될 수가 없다고 선언하고 고집하고 살아가지 않는 이상, 누구나가 변화될 수가 있고 모든 것은 자연의 이치상 변화할 수밖에 없습니다. 오히려 절대로 변화될 수 없다는 생각을 유지하는 것이 변화되는 것을 막는 요인이 될 것입니다. 따라서, 스스로가 원하는 이상적인 자신의 모습을 마음속으로 심상화 하면서 변화를 추구하면 자연스럽게 작은 부분부터 변화가 시작될 수 있습니다. 물론, 외향적인 사람이 갑자기 내향적인 사람으로 완전히 변화되거나 내향적인 사람이 갑자기 외향적인 사람으로 하루아침에 변화되는 것은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자신의 모든 성격을 하루아침에 정반대로 뒤바꾸는 것은 오히려 진정한 자기 다운 모습을 잃어버리는 격이 되는 경우도 많을 것입니다. 따라서, 원래 가지고 있는 성격의 장점을 그대로 살리면서, 단점은 반대되는 성격의 장점으로 가져와서 변화시키는 게 더 바람직하다고 볼 수 있는 것이죠. 사람들이 성격을 바꾸고 싶은 이유는 지금까지 살아왔던 것보다 더 나은 내일을 살기 위해, 그리고 더 나은 자신이 되기 위해서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 자신을 완전히 잃어버리게 되면 변화되고 싶은 이유와는 점점 더 거리가 멀어지게 됩니다. 따라서, 자기 자신의 참다운 모습을 유지하면서 장점은 더욱 살리고 단점은 보완하는 방법을 적용해서 성격을 조금씩 변화시켜 나가는 것이 바람직할 것입니다.

 

소극적인 성격이 싫어서 활발한 성격으로 변화되고 싶은 사람은 소극적이지만, 세심한 장점은 그대로 살리면서 활발한 성격의 에너지 넘치는 장점은 가져와 자신의 모습에 적용시키고 응용해 볼 수가 있을 것입니다. 옷차림이나 외모의 특정한 부분들에 변화를 주는 것으로도 기분이나 마음의 변화를 유도할 수가 있을 것이고 항상 무엇이든지 해낼 수 있다는 생각을 유지하고 확언하는 습관을 가지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변화를 위해서는 기존의 행동이나 무의식적인 습관을 바꾸는 것, 그리고 변화를 유지해나가는 꾸준함이 가장 중요합니다. 하루 이틀 변화되는 모습을 지켜나가다가 금세 포기해 버리면, 변화는 완성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매일매일 동기부여를 하는 영상들이나 콘텐츠를 보고 들으며 스스로에게 자극을 주고 되뇌는 습관을 생활 속에서 적용시키면서 하루하루 나아가다 보면 어느새 변화되고 부족하다고 생각했던 성격의 단점들이 보완해되어 가는 이상적인 자신을 만날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합니다.  

사람들은 대화를 할 때, 대부분 언어나 말을 통해서 커뮤니케이션을 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언어나 말보다는 비언어적인 커뮤니케이션의 비중이 80%를 넘어간다는 연구결과가 있습니다. 이렇듯이 중요한 것은 언어나 말 자체보다는 그 너머에 담긴 의미이며, 같은 말이라도 비언어적으로 전달되는 뜻이 다를 수 있고 받아들여지는 상대방의 느낌이 중요하다고 할 수가 있습니다. 말이나 언어는 언제든지 상황에 따라서 바꾸거나 속일 수가 있지만, 무의식적으로 얼굴에 나타나는 표정이나 근육의 움직임, 행동들은 바꾸거나 속이기가 쉽지 않습니다. 따라서, 사람의 심리를 잘 간파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이 무의식적으로 나타나는 비언어적 신호를 잘 읽어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중에서는 얼굴 표정을 통해서 숨기지 못하고 드러나는 비언어적인 신호가 있습니다. 기분이 좋지 않아도 형식상이나 분위기상 웃어야 하는 상황이 있는데, 이럴 경우 사람은 인위적으로 웃음을 만들지만, 정말로 자연스럽게 웃을 때처럼 얼굴 근육을 움직이는 것은 어렵습니다. 잘 관찰해보면 어느 한쪽은 부자연스러운 움직임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상대가 자신에게 호감이 있는지 살펴볼 때에도 이러한 얼굴 근육의 움직임을 자세히 관찰하면, 그 사람의 본심을 어느 정도 유추해낼 수가 있습니다.

 

또한, 얼굴의 표정이 항상 밝거나 유쾌한 사람은 매우 사교적으로 보이고 긍정적으로 보이지만, 너무 일관적으로 같은 표정을 지속적으로 유지한다는 것은 오히려 그 표정 속에 있는 자신의 본래 모습을 감추기 위해서 그런 표정의 가면을 쓰고 있을 확률이 높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무엇이든지 아무리 긍정적이고 좋은 것이라 해도 과장되거나 과도할 경우, 무언가를 감추기 위해서 그러한 표정이나 표현을 얼굴에서 나타낸다는 것을 잘 간파해야 합니다. 눈빛이 오래도록 향하거나 자주 바라보는 곳은 그 사람이 마음을 숨기려고 해도 숨길 수가 없는 부분을 나타내는 중요한 단서 중에 하나입니다. 눈빛은 언제나 마음이 향하는 곳으로 가기 마련입니다. 본심을 감추려고 해도 눈빛은 마음이 원하는 곳을 지향하기 때문에 상대방의 본심을 알기 위해서는 눈빛이나 시선이 자주 향하는 곳이 어느 곳인가를 발견해내는 것도 중요 포인트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화를 하다가 상대방의 얼굴의 근육이 펴지고 느슨해진다면 상대방이 그 대화를 즐기고 좋아하고 있다는 비언어적인 신호일 확률이 높으며, 그런 대화를 계속하다 보면 어느새 자연히 웃음이 만연한 얼굴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격식이 갖춰진 대화라고 할지라도 대화를 하는 도중에 상대방의 얼굴이 경직되고 굳어지는 얼굴 근육을 보게 된다면, 상대방이 대화를 싫어하거나 지루해한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언어나 말로는 호응을 하고 있지만, 본심은 대화에 집중하지 않거나 호응하지 않는다는 것을 나타내는 신호를 얼굴로부터 찾아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얼굴 근육의 움직임이나 본인도 인지하지 못하는 비언어적인 표정에서 나타나는 많은 부분들이 본심과 다르게 계속해서 본심을 나타내는 신호로 작용하고 있으며, 사람의 심리를 간파하기 위해서는 피상적으로 보이는 말과 언어만이 아니라 그 이면에 숨겨진 비언어적인 신호를 잘 읽어낼 수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비언어적인 신호를 읽어내는 능력은 훈련을 할수록 향상될 수 있기 때문에 커뮤니케이션에 있어서 다른 사람보다 높은 위치에 도달하고 싶다면 그에 따른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입니다.

일을 할 때, 동기부여가 되지 않으면 효율이 떨어지고 작업의 능률이 오를 수가 없습니다. 동기가 부여된 상태에서 일을 해나가는 것과 동기부여가 되지 않은 채로 일을 해나가는 것은 그 결과에 있어서 많은 차이를 보이게 되고, 성공에 도달하는 데 있어서도 큰 차이가 나타날 수 있습니다. 감정적으로 안정되지 못하고 스트레스가 쌓이게 되면, 스스로 동기를 부여해서 어떤 목표를 가지고 앞으로 나아가는데 힘들거나 피곤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마음이 지치고 몸이 힘들게 되면, 아무래도 결단력을 가지고 행동을 실행하는 데 있어서 크나큰 제약이 따르게 된다는 말입니다. 여러 가지 일이나 작업들만 늘어놓은 채로 정리가 되지 않고 혼동스러워지면, 정확하게 가야 할 길이 무엇인지 볼 수가 없게 되고, 목표가 너무나 멀고 크게 느껴져 일을 제대로 하지도 못한 채, 지치게 됩니다. 의지를 가지고 반드시 해낼 거라고 다짐을 해봐도, 얼마 가지 않고 낙담하거나 그런 의지력을 지속하지 못합니다. 자기 자신의 만족을 넘어서서 많은 사람들에게 동의를 얻고 싶어하는 마음은 스스로 동기를 부여해서 앞으로 나아가는 데에 크나큰 지장을 주게 됩니다. 주관적인 확신을 가지고 가치관에 따라서 움직이는 게 아니라 타인의 눈치를 보면서 비교하거나 계속 인정을 받으려고 애를 쓰다 보면 실망감이 앞서고, 가지고 있던 열정과 의욕마저도 상실되게 될 수가 있습니다. 

 

또한, 부정적인 감정 상태에 집착해 있으면 일에 집중해서 전념을 할 수가 없기 때문에, 그만큼 효율이나 능률은 낮아지고 일의 결과나 성취가 예상보다 좋지 않게 나올 수가 있습니다. 일의 효율이나 성취도가 낮아지면 낮아질수록 그에 따른 동기부여는 점점 더 힘을 잃게 되고,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동기부여를 방해하는 악순환을 끊기위해서는 감정적으로 불안정한 부분을 해소할만한 명상이라든지 마음을 안정시키는데 좋은 음악을 들으면서 수영이나 조깅 같은 운동을 한다든지 하는 습관을 꾸준히 갖도록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몸이 활발해지면서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면, 마음도 영향을 받아서 좋아지는 효과가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업무가 제대로 정리되지 않아서 흐트러져 있거나 너무 많은 양의 일을 하고 있어서 동기부여가 힘들다면, 우선적으로 중요한 일부터 차례대로 정리를 한 후에, 업무의 편의성을 올리고 최대한 간편하게 전체적인 정리를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목표를 향한 길이 있는데, 너무 많은 경로를 한꺼번에 생각하다 보면, 뒤죽박죽이 되어버려서 집중력이 떨어지므로, 가장 효율적이고 빠른 경로를 우선적으로 찾아서 그곳에 집중하는 기술이 필요한 것입니다. 만약에 혼자서 컨트롤할 수 없는 일이나 스트레스에 시달려서 동기부여가 되지 않고 있다면, 주변의 능력있는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는 것도 권장할 만한 일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다른 사람과의 협력이나 협동 속에서 자신이 보완해야 할 점들을 빠르게 찾아내거나 수정할 수가 있고, 혼자서만 일 하는 것보다 서로 간의 격력 속에서 보다 동기부여할 수 있는 요소들이 많아지게 될 것입니다.

자기 자신에게 솔직한 사람이 된다는 것은 주위의 누군가나 다른 사람이 자신에게 무엇이라고 하든지 상관없이 자신만의 주관과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타인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신만의 가치관대로 살아가는 것이죠. 자기 자신에게 언제나 솔직하다는 것은 반드시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단점도 분명하게 존재합니다. 장점은 자신이 제대로 하고 있는지에 대한 의심을 하지 않으며, 그에 따라서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도 의심을 덜 하게 됩니다. 그리고 말과 행동이 대부분 일치하게 됩니다. 감정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기도 하기 때문에 거짓이 없으며, 다른 사람에게도 열정적으로 보이고 노력하는 모습이 주로 나타나게 됩니다. 

 

이에 따라서, 사람들로부터 두터운 신뢰나 사랑을 받는 일이 더 많아지게 됩니다. 사람들은 주로 정직하게 솔직한 사람을 좋아하기 마련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과 쉽게 친해질 수가 있고, 그로 인해서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도 커지고 자존감도 높아지게 됩니다. 하지만, 언제나 모든 것에 좋은 면만 있을 수는 없듯이 단점도 존재하는데, 그것은 다른 사람을 의심하지 않는 성향이 강해지기 때문에 보이는 일면적인 모습만 보게 되고 실제로 그 이면의 진정한 모습을 보기가 힘들어져서 다른 사람에게 속거나 이용당하는 일이 생길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논리적이고 피상적으로 말을 잘하는 사기꾼 같은 사람들에게 속거나 당하기 쉽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때로는 감정적인 표현을 너무 직설적으로 하는 경향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너무 감정적인 사람처럼 보이거나 무언가 덜 성숙된 사람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때로는 상황에 따라서 거짓말을 해야 될 경우도 많지만, 이런 솔직한 성향 때문에 거짓말을 해야 될 때, 진실을 이야기해버려서 곤란한 상황이나 미움을 받는 경우가 생기기도 합니다. 이렇듯이 솔직함으로 인해서 피해를 겪는 경우도 많이 생기게 됩니다. 솔직함은 인간에게 있어서 매우 좋은 덕목이기도 하지만, 부작용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솔직한 성향이 많은 사람일수록 보완해야 할 점들이 있습니다. 우선은 사람들이 말하는 것들이나 보이는 것 그대로 믿거나 수용하지 않는 것입니다.

 

동전에도 양면이 있듯이 모든 말이나 행동에도 양면이 있기 때문에 항상 보이는 이면에 있는 것을 주의해서 관찰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받아들인 정보 이상의 것에 관심을 갖고 자신의 시야를 넓히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렇게 해야 다른 사람의 말만 믿고 쉽게 이용당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솔직하게 말하거나 표현하는 것도 좋지만, 그 말과 행동의 결과에도 집중해서 어떤 말과 행동을 했을 때, 다른 사람에게 안 좋은 영향을 끼치지는 않을지 신중하게 먼저 고려를 해야 합니다. 누군가가 솔직해서 벌어지는 피해나 상황 때문에 힘들다면, 솔직함이 가진 이러한 단점을 잘 보완하는 습관을 가지도록 노력해서, 그것으로 인해 불러올 수 있는 결과나 피해를 줄여 나간다면, 훨씬 더 원만한 사회생활과 인간관계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살다 보면, 남의 뒤에서 흉을 보는 사람들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항상 다른 사람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말하고 흠을 들추어내려고 안달이 나있는 것처럼 행동합니다. 그러면, 왜 타인의 흉을 보는 사람들이 있는 걸까요? 타인의 흉을 보는 이유는 마음 한구석에 감추고 싶은 무엇인가가 있어서라고도 할 수가 있습니다. 자신의 결핍된 부분을 감추기 위해서 자신보다 조금이라도 나은 사람을 보면 자기보다 아래로 깎아내리고 싶어 하는 심리가 작용하는 것이죠. 그리고 그 속에서 우월감을 찾는 것이라고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지 못할까 봐 잔뜩 겁이 나있기 때문인데요, 사람들은 사회적 동물이고 집단 속에서 소속되어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이기때문에, 그 집단이나 그룹 속에서 외면당하고 사랑받지 못한다면, 소외된 기분을 느끼고 살아가야 하고, 그만큼 자존감이 낮아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두려움을 회피하기 위해서 다른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좋지 않은 행동도 서슴지 않게 되는 것이죠. 사람의 심리에는 투사라는 것이 있어서 자신의 부정적이고 어두운 부분을 다른 사람에게 전이를 시킨다음에 다른 사람에게서 보이는 자신의 안 좋은 부분을 더욱더 싫어하게 되고는 합니다. 본래는 자신 속에 감추어진 어두운 부분을 타인에게 투사한 다음에 모든 것을 남의 잘못이나 흠으로 스스로 생각하게 되는 것이죠. 매우 위험하지만 쉽게 감지하기 힘든 부분이라서 주의를 해야 합니다. 또한, 부정적인 생각 하나에만 몰두해서 타인의 좋은 면을 인정하거나 보려고 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이 생각하는 부정적인 면만 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저마다의 장점을 가지고 있지만, 한 가지 부정적인 생각에 빠져서 편협한 시각을 갖게 되면, 모든 사람들이 부정적으로 보이고, 그에 대한 좋은 말은 전혀 할 수 없게 되어 버립니다.

 

자신의 성격이나 성향과 맞지 않으면, 모든 것이 타인의 잘못이라고 생각을 하게 되고. 세상에는 여러 가지 성격과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오로지 자신의 성격과 성향을 위주로 사람을 판단하게 되어 버려서 극단적 이기주의에 빠지게 되어, 자신과 맞지 않는 다른 사람들은 모두 잘못하고 있으며 옳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극단적인 오류를 범하게 됩니다. 살펴보았듯이, 타인을 흉보는 심리는 대체적으로 자신의 편견과 고정관념에 빠져서 세상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자신의 테두리 안에서만 보기 때문에 생기는 심리라고도 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러한 심리를 극복하려면 보다 넓은 시야와 관점으로의 전환이 무엇보다도 중요할 것입니다. 

 

예로부터 성선설과 성악설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즉, 태어날 때부터 인간이 선하거나 악하거나 둘 중 하나로 이미 결정되어 있다는 이론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두 가지 설은 인간이 선천적으로 가지고 태어나는 것에 크게 비중을 두는 것으로 후천적인 환경과 영향에 의해서 변화되는 측면을 제외하고 생각하는 부분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선척적으로 인간이 악하거나 선하거나 둘 중에 하나로 결정되어있다면, 과연 인간의 사회 시스템에 도덕이나 윤리라는 항목을 적용해서 인간을 통제하거나 억압하지 않을 경우에는 과연 무슨 일이 일어날까요? 사람들은 이 두 가지 설에 관해서 주관적인 관점에 따라, 언제나 통일된 생각을 갖지 못하고 서로 양분되어 왔습니다. 본래 성선설 자체는 중국의 유교에서 나왔다고 봐도 무방하며, 원래부터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굉장히 도덕적인 존재이고 그 본성이 깨끗하고 선하기 때문에 외부의 환경에 영향을 받아서 악한 행동을 할수록, 그 선한 본성을 더럽힌다고 하는 이론입니다. 성악설은 반대로 유교로부터 벗어나서 인간은 원래부터 악하다고 주장하는 이론이며, 후천적으로 아무리 선한 행동을 하여도 인간의 존재가 본래부터 악하기 때문에 결코 선해질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사실 인간은 어릴 때부터 작은 곤충이나 동물을 죽이면서 즐거워한다든지 하는 행동을 보이기도 하며, 자라면서 폭력이나 미움, 괴롭힘 등을 겪으면서 성장을 해나갑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역사적으로 알 수 있듯이, 인간은 전쟁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학살한 역사적 증거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것들을 보면 마치 인간은 본래부터 선하기보다는 악하다는 관점으로 해석해야 될 것처럼 보이는 무수한 증거들을 가지고 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성선설을 주장하는 쪽은 원래부터 순수했던 아이가 외부로부터 좋지 않은 영향을 받아서 순수한 마음이 오염되고 원하지 않게 악행을 저지르게 된다고 말합니다. 인간이 원래부터 순수하지 않다면, 다른 사람들을 향한 동정심이나 이타심도 없을 것이며, 누군가를 위해 울거나 눈물짓는 일도 없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틀림없이 인간은 동물들과는 다르게 타인을 위해서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목숨을 바쳐서 남을 돕기도 합니다. 인간은 분명히 이기적이지만은 않습니다. 인간에게는 희생정신이라는 것이 있으며, 이것은 인간의 선함을 가장 강하게 나타내는 본성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어찌 보면, 성악설이나 성선설은 어느 한쪽으로 답을 내리려고 만들어낸 단지 이론일 뿐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인간은 선과 악의 두 가지 양면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고도 볼 수 있으며, 누군가에게는 선이라고 할지라도 때로는 누군가에게는 악이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단순하게 인간이 선하다 악하다고 논쟁을 하기 이전에 인간은 언제나 선택을 할 수 있는 존재이며, 선과 악 둘 중에 어느 한쪽도 취할 수 있다는 것이 인간이 가진 위대함일 것이고, 크나큰 책임감일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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